The Vaguelette Variations :
서로 다른 춤을 추더라도

지강 개인전 <Dancing on the Vaguelette> (2022.7.13.-8.13, 갤러리이든)

전민지 비평가

기 영원히 이어지는 파도, 어둑어둑한 바다와 꺼질 줄 모르는 달빛이 있다. 여인은 끝없는 잔물결 사이를 유영하며 느릿하게 춤을 춘다. 그러다 일순간 당신과 그 주변에 시선을 고정한다. 자신의 팔을 가볍게 쥐고 있는 그는 언뜻 연약해 보이나 어딘가 강인한 얼굴을 지녔다. 그런가 하면, 그가 무릎을 끌어안자 두려움을 내재하는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평온함이 피어오른다. 이제 쉬이 읽어내기 힘든 무표정 너머로 한쪽 가득히 펼쳐진 회화를 보자.

과거와 현재를 가를 틈도 없이 매일을 채워내던 양가적 감정은 어느새 날것의 패턴으로서 천에 덧대어진다. 고통과 사랑, 증오와 조화, 악몽과 명상. 결국 두터운 꿈의 벽을 허무는 지강 작가의 회화는 마치 반투명한 막처럼 여인의 형상을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당신을 비춘다. 이를 거울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아마 간만에 닦은 덕에 왠지 더욱 맑아 보이는 내면의 거울일 것이다.

한참 동안 두드린 적 없었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운동성을 오롯이 담지하는 일종의 통로다. 무의식 속 감정이 나아갈 길을 곧게 제시하면서도 공백이 없는 유연함으로 당신의 발걸음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겠다. 여기에서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강렬한 자극은 어떠한 형상으로도 유효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가냘픈 존재들은 작동하지 않는 추상적 기호에 머무르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나른한 속도로 우리를 이끈다. 이처럼 공간과 마음을 동시에 채우는 시간은 결점을 거부하고 포장하던 한때를 내려놓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내밀한 손짓이 만들어낸 잔물결은 하릴없이 넘쳐버리는 대신, 단단한 풍경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으로 자리한다.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은 결코 요원한 일이 아니다.

한편 작가가 또 다른 세계와 환상 속에서 마주친 오브제들은 현실의 층위에 실재하게 됨으로써 공간성을 연장한다. 이들은 무뎌진 조합이 되기를 거부한 채, 마치 뒤섞인 파도의 거품처럼 서로의 안전한 지지체로서 작동한다. 이와 같이 각자의 시차를 넘고 상호 인도하며, 회화와 병치되는 점토 작업은 전시장의 총체적 공명을 가능케 한다. 그뿐만 아니라 캔버스 내부로부터 출발한 라인 드로잉은 시선의 흐름을 무한히 팽창하며 전에 없던 차원을 드리운다. 이렇게 탄생한 평행우주는 붓질로 환원된 솔직함과 작가가 내뱉은 숨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로 이곳에 ‘흔들리긴 해도 꺼지진 않는’ 1) 것들이 프레임 안팎으로 놓인다. 그렇기에 이 결과물은 설익은 도피처라기보다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아도 충만한 장소다.

강처럼 흐르던 각자의 물결은 전시장 출구에 한데 모여 합류 지점을 이룬다. 여과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이 자리에 고이 남아 머뭇거리던 이들을 반기고 있다. 황홀함의 끄트머리를 붙잡겠다는 애처로운 욕심이 곳곳에서 녹아내릴 때, 끝없는 애정에서 비롯된 꿈과 춤이 서로에게 닿는다. 그 움직임은 각기 다를지언정 말이 없던 슬픔은 안온한 미소가 되고, 가면을 쓴 불안은 선명한 용기가 된다. 그렇기에 이곳을 가득하게 메운 리듬은 변주곡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지강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 음악을 마주한다. 천장과 가벽을 거쳐 변형되고, 분해되고, 재창조된 표면 아래에는 전체를 이을 만큼 단단한 줄기가 자라나고 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춤을 추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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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지강 작가의 신작 <흔들리긴 해도 꺼지진 않는>(2022)을 인용하였다.